결심과 절제는 친구. 부제는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면 끊어야 한다> 입니다. 이번 말씀 나눔을 통하여서 내가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결심하고 절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은 다니엘 1장 8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8절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절 :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절 :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절 :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절 :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절 :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절 :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절 :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절 :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포켓몬스터라는 만화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 볼 때 포켓몬스터가 우리나라에 처음 방송이 될 시기였는데 지금도 그 노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만화가 끝날때 나오는 노래입니다.
'피카추, 라이추,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맞아!'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얘기하려고 시덥지 않은 노래를 불러 보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수님을 만나 엄청나게 바뀐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얼굴이 그렇듯, 저는 어릴 때 입이 아주 험했습니다. 현재 학생이나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가끔 학생들과 풋살을 할 때면 옆 코트에서 들려오는 단어들을 듣게 됩니다. 그 단어는 '시X'이라는 단어입니다. 잘 차도 시X, 못 차도 시X, 못 넣어도 시X, 골 넣어도 시X, 물 먹어도 시X, 경기 끝나고 걸어가면서도 시X, 듣기가 아주 거북했습니다.
모든 욕은 그 뜻을 깊이 파고들면 내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방금 말한 시X이라는 단어는 '씹하다'의 관형사인 '씹할'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데 원래는 '성교하다' 또는 '여성의 성기를 비난하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화할 때 자주 등장하며 개의치 않고 썼던 이 단어가 우리도 모르게 아주 더러운 욕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 21장 23절 :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말씀은 항상 반대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복 받을거야.' 이 반대는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할거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거야.'의 반대는 '예수님을 믿지 않음연 구원을 받지 못할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의 혀를 지켜야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5자 11절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즉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런 더러운 말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 역설적이게도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와 학생, 어른들이 이러한 종류의 욕을 하는 것을 보면 듣기 거북하다고 했습니다.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남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제가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한 놈이 아니었단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지나며 2학기를 맞을 때였습니다. 저는 문득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 이제 욕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욕을 하나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으려는 것이죠.
그러하였더니 제 입 밖으로 나왔던 그 더러운 것들을, 제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겨했던 그 말들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이 그러한 욕을 해도 말을 받아치는 것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제 직장에서도 동료들이 물어봅니다. '선생님, 이번 수업은 어떻던가요? 저는 진짜 못해먹겠던데요.' '오, 저는 재밌던데요. 감사하던데요?' 그 다음주도, 그 다음주도 똑같이 물어보면 저는 똑같이 대답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부정하며 불평을 할 때 저는 '아, 이 정도면 감사하죠. 너무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어느 날 선임 선생님들이 물었습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맨날 감사하냐.' 이렇게 말이죠.
제 자랑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했다면 끊어야 할 것이 있으니 결심을 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결심을 해놓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말짱 도루묵입니다.
예를 들어 아까 저의 예화를 들었던 욕을 끊는다거나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서 계속 먹어대고 운동하기로 했다면서 누워서 자기만 하는 것, 금연, 금주, 새벽기도를 가기로 결심해놓고 새벽 1~2시에 자는 것들이 말입니다.(제 얘기입니다.)
욕을 끊기로 했으면 입을 꾹 다물어보고 다이어트 하기로 했으면 운동해야 하며 먹고 싶은 것들을 줄여야 하고 금연과 금주를 하기로 했으면 내 눈 앞에서 없애버리던지 보건소를 가서 도움을 청하던지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선포를 하던지 새벽기도를 가기로 했으면 일찍 자던지 등의 결심을 했다면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다니엘은 이스라일 백성이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무릎을 꿇게 되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그냥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족이나 귀족 몇 사람을 골라내되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답고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만한 소년을 데려가서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며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골라냈는데 그것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입니다. 완전 엘리트들이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일제 강점기로 인해 우리나라는 주권을 잃어버렸고 강제 징용되어 전쟁에 나가게 되어 일을 억지로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름도 바꾸어야 했죠.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 억압과 일본식 사회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말이죠.
문제의 결심은 잡혀가자마자 시작됩니다.
다니엘 1장 8절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환관장은 왕궁 내시의 총책임자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너네가 왕 앞에 서야 하는 소년들인데 왕의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니? 다시 말해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얼굴이 좋아 보일 것이 아니냐?'고 말이죠.
하지만 다니엘은 열흘 동안 저희를 시험하시어 채식과 물만 주셔서 누가 더 얼굴이 좋은가 비교해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다른 소년들보다 다니엘과 친구들의 얼굴이 좋아보였습니다. (단 1:15)
그 이후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쭉 주었습니다.
이 뜻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다니엘이 채식주의자라고 말하는걸까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 온 본인의 유다 민족이 이방 왕인 느부갓넷살의 민족동화정책에 따르지 않겠다라는 NO! 사인을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느부갓넷살에게 잡혀오긴 했으나 잡혀 왔다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동일하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는 것을 대변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네 소년들은 그 나라에 모든 지혜자들보다 십 배나 나은 지혜를 가지고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니엘 3장에는 그 유명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던져지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일은 느부갓넷살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금 신상에 모두 절을 하라 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한 태도를 보입니다.
3장 16-18절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넷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국 그 친구들은 평소 풀무불의 온도보다 일곱배나 뜨겁게 한 곳에 던져지게 됐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들을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타서 죽었습니다. (단 3:22)
결과는 역시나 그들은 살았고 느부갓넷살은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 비하면 저의 결심은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우리가 결심을 하고 그에 따른 절제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받아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이 만약 왕이 주는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먹었다면 느부갓네살이 과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을까요? '역시 하나님의 사람도 다른 것이 없다. 순순히 따르는구나.'라며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그대로 다른 이들처럼 금신상에게 절했다면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역시 하나님의 사람도 다른 것이 없다. 순순히 따르는구나.' 라며 똑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직장이든 어디든 초등학교 때의 못된 습관을 가지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의 본을 보일 수 있을까요?
작은 것도 좋습니다. 우리는 결심했다면 절제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그 결심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결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결심, 하나님만 따르겠다는 결심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결심을 지킬만한 힘과 절제할만한 힘, 그 이후의 삶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것 같아 예화를 더 들려드립니다.
저는 군대에서 이런 사람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군데에는 밖에도 공중전화도 있었고 생활관 내에도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대화들을 참 많이들 합니다.
'어, 자기야, 그래, 나 훈련하고 잘 지내고 있지. 아, 담배? 담배 끊어야지. 휴가 나가기 전까지 꼭 끊고 나갈게, 우웅~ 끊어.'
그러고 나서는 정말 당장이라도 담배를 끊는 병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관물대에 있는 몇갑이 되는 담배를 동기들을 줘버리거나 바로 잘라서 버려버리는 일들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어, 나 돈 많이 모았어. 가야지, 전역하면 모은 돈으로 여행 다녀와야지. 어 알겠어~. 돈 열심히 모으자. 화이팅'
이런 병사들은 PX에 가서 사먹는 것도 줄이고 건조기를 돌릴 돈도 줄이고 빨래를 넙니다. 이런 병사들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본인의 여자친구가 끊으라는 말에 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본인의 여행을 위해서 자기를 절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날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는 무슨 결심을 하고 무슨 절제를 하며 살아가고 계시는지요? 작아도 좋습니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결심할게요.' '저 예수님 사랑하니까 예수님보다 더 사랑했던 이것, 저것 절제할게요.'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심하셨다면 절제하십시오. 잠깐은 뭔가 손해보는 것 같을지라도 돌아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결심과 절제는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을 것입니다.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