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당나귀. 이 말씀 나눔을 통하여 이 사람 저사람의 말이 아닌,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도를 듣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본문은 신명기 5장 32-33절 말씀입니다.
32절 :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33절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부자와 당나귀라는 예화를 들려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옛날에 사이좋은 아빠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의 말을 아주 많이 신경쓰는 팔랑귀를 가진 부자(父子)였습니다.
어느 날 부자는 시장에다가 내다 팔 짐을 들고 아버지는 당나귀에 올라 탄 후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날때였습니다.
누군가 수군수군하는게 들리자 부자는 신경쓰지 않는 척 귀기울였습니다.
"저기 좀 보세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은 힘들게 걸어가는데 혼자서 당나귀에 타고 편하게 가다니 저런 몹쓸 아비가 다 있나."
이 소리를 듣자 아버지는 머쓱해하며 당나귀에서 내려 아들을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곤 다신 길을 나섰습니다.
어느 한 마을에 다다르자 빨래를 하던 여인들이 또 수군수군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어머어머 저기 좀 봐! 저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아버지는 힘들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가고 있는데 아들이라는 놈은 당나귀에 타서 편하게 가다니,,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이여 쯧쯧,,,"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이 타고 있는 당나귀에 같이 올라타 길을 걸어갔습니다.
또 다른 동네에서 지나가던 노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이런 불쌍한 당나귀 좀 보라고. 저 무거운 부자가 올라가 탄데다가 짐까지 짊어지고 가니 얼마나 힘들까. 동물도 보호를 하지 않다니 말이야. 에휴 쯧쯧,,"
이 소리를 들은 부자는 재빨리 당나귀에서 내려 밧줄로 당나귀를 묶어 어깨에 짊어지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돌다리를 건너고 있는 그 때, 아들이 당나귀가 너무 무거웠던 나머지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당나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물살에 둥실둥실 떠내려가버렸고 부자는 그대로 빈털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그만 우리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흑흑"
예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남의 말에 얼마나 귀기울이시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시는가요?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듣는 것은 경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태도입니다. 이 말씀나눔에서 볼 태도는 이 경청이 아닙니다. 줏대없는 신앙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줏대]란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배타적이라는 말을 들을때가 많습니다.
"꼭 예수여야 하냐?",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실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답변을 하시나요?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맞다, 꼭 예수여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구원이 없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요구하곤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사랑이 없어서 되겠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 사람과 다른 눈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선행을 베풀고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깁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어떠한 실수가 나오거나 악행이 나오거나 하면 아주 큰 비난이 일어납니다. 선행은 당연하다고 하며 칭찬은 커녕 덮어버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그 큰 선행보다 작은 악행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물어뜯으려고 애쓰는 게 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교회는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37-39절 말씀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3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절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을 무려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사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고 예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욕해도 우리의 선행을 몰라주어도 우린 사랑을 계속해서 행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8-42절 말씀입니다.
38절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절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절 :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절 :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약 4km)를 동행하고
42절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돈,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풍족하다면 가난한 사람과 과부들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명예,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명예가 높고 권력이 있다면 그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으로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섬겨나가야 할 것 입니다. 이 뿐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것은 다 나눠야 하고 달라고 하는 것은 다 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우리가 절대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입니다. 복음입니다. 진리입니다. 세상이 다 달라고 해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면 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속임이 굉장히 많이 들려옵니다. "괜찮아, 다 그래.", "이번 한번쯤은 괜찮아.", "너만 왜 이렇게 유별라냐? 너만 특별하냐? 한번만 나를 도와줘라."라는 등의 속삭임으로 우리의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예배를 도둑질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마저 사랑이라는 것에 포장하여 내던져버리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로마시민권자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특권과 보호로 인하여 일반 시민보다 훨씬 강력한 지위와 권리를 누렸습니다.
1. 처형과 고문을 면제 당하였습니다. 반역죄가 아니라면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으며 고문이나 채찍질과 같은 고문을 받지 않았습니다.
2. 공정한 재판과 상소권으로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도 있고 재판에서 부당한 형법을 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3. 사회적 지위로는 로마 사회에서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았고 고위층 출신임을 암시하는 강력한 신분적 상징이었습니다.
4. 법적 절차 없이도 형벌을 받지 않았으며 세금 등에서도 각종 혜택을 누렸습니다.
이 외에도 투표권, 공직 진출권, 상업 활동권, 결혼권, 이주권, 자녀의 시민권 상속, 노예 해방 시 혜택, 군 복무 관련 혜택 등등등 굉장히 많은 혜택들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어떠했나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 말씀입니다.
14절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리하니라
위와 같은 혜택들, 로마시민권자임을 내세우는 것보다 바울 자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눈물나는 고백인 것입니다.
다 내주었습니다. 로마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을 때 그는 진정한 사도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훗날 예수님과 똑같이 죽을 수 없다고 하며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많이 들려올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교회 욕도 점점 많이 들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욕바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 흔들리지 마십시오. 남의 말을 듣는 팔랑귀가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다간 당나귀를 잃어버린 부자가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청은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청과 다르게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복음이며 진리이고 곧 예수님이십니다.
마지막 쉬운 예를 들고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른쪽에는 나의 진짜 부모님이 내 눈 앞에 있습니다. 왼쪽에는 100억 아니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줄 수 있다고 말하는 모르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말합니다. "네 눈 앞에 있는 부모를 모른다고 해봐. 그럼 내가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게. 딱 한번이야. 딱 한번 모른다고 하고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다시 부모님한테 가서 섬기고 그 돈으로 그 명예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면 되잖아." 라고 합니다. 아주 달콤한 유혹일 것입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십시오. 세상 그 어떤 좋은 것을 준다해도 난 도저히 내 부모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십시오.
줏대있게 믿음을 지킵시다. 예수님 믿는 것 폼나게 믿읍시다. 어떠한 조롱에도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들의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 훗날 예수님께 갔을 때 "수고 많았다. 나를 모른다 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사랑을 지키고 믿음을 지킨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아 나와 함께가자."라는 메시지를 기대하고 기도합시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승리하십시오.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