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부제는 탕자의 흔적, 예수의 흔적입니다. 이 말씀 나눔을 통해 나에게 있는 약점이나 단점이 나의 자랑이 되고 내가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말씀입니다.


7절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절 :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절 :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절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이 주제가 이해가 되시나요?

사람은 개인 개인마다 약한 점들이 하나씩, 아니 수없이 존재합니다. 그 약함은 숨기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격이든 성향이든 약한 점들이 다들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많은 약한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특히 비염이 굉장히 심합니다. 그래서 환절기만 되면 아주 힘들어지게 됩니다. 어릴때부터 비염을 달고 살았던터라 제 손에는 늘 휴지가 들려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휴지가 필요 없어집니다. 어떻게 콧물을 닦게 되느냐? 손으로 하게 됩니다.


콧물을 손으로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을 차례로 닦아냅니다. 그래도 나는 콧물을 어떻게 닦냐? 반대 손에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귀와 코, 입과 목 등 연결이 되어 있죠? 그래서 비염환자들은 코가 막히면 눈도 아프고 뻐근하고 목도 아픕니다. 특히 제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비염으로 인해 두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두통이 양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 한쪽으로만 오게 되면 편두통이 굉장히 심해집니다. 이 편두통이 사람을 굉장히 예민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저의 육적의 약함이 제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육적인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 제 생각들로 인해 쉽게 무너지는 것은 걱정과 근심입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에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며 해도 되지 않을 걱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걱정이 아주 많았던터라 소풍을 가게 되면 소풍을 떠나는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를 많이 괴롭혔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어머니가 늦잠을 주무셔서 김밥을 못 싸시는 것은 아닌지, 밖에 비가 오나 안오나 걱정을 해대며 잠이나 더 잘 것이지 뭐가 그렇게 염려스러운지 어머니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제게 있는 약함들이 제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7절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가시의 헬라어 원어는 작은 가시가 아니라 뾰족한 막대를 의미합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찔러대는 무서운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8절 :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떠한 약점이 있었을까요? 바울에게는 여러 가지 질병이 었었다고 합니다. 말라리아 열병에 걸린 것과 간질병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학자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설은 안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 :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려 가는 길에 강력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평생 안질이 생기고 맙니다. 안질은 쉽게 눈병이라고 생각하되 심해서 시력을 많이 잃었다고들 합니다. 이런 질병을 안고 바울이 세 번씩이나 주께 간구하였을 때 9절에서 주님께서 무슨 답을 주셨나요?


9절 :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위와 같이 답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무엇일까요? 흔적입니다. 예수의 흔적은 헬라어 단어인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스티그마는 불도장이 찍힌 흔적, 낙인, 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떠한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23절 :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나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하였으니

24절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절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절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절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예수님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들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생기게 된 안질과 예수님을 전하면서 생기게 된 채찍질 당한 자국들, 돌 맞은 자국 등 모든 것이 예수님 때문이라고 해도 되고 예수님 탓을 해도 됩니다. 그래도 되는 바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심한 후 예수님을 믿게 된 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것들입니다.


"아~ 예수님 믿으면 걱정, 근심 없어질 줄로 알았는데,, 아~ 예수님 믿으면 공부 잘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 예수님 믿으면 돈 잘 벌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던가요 여러분? 우리는 나의 약한 것을 고쳐주시고 치유해주시고 바꿔주시는 하나님만 바라기 때문에 이런 것 하나 바꿔주시지 않으면 눈을 치겨뜨고 팔짱을 끼고 하나님을 욕하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예수의 흔적을 보며 예수님을 도리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채찍질과 돌에 맞은 본인의 몸을 보면서 "아~ 예수님께서 보잘 것도 없는 날 위해 채찍질을 당하시고 돌을 맞으셨구나, 아~ 예수님께서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날 의지하지 않겠니? 내가 손 잡아줄게라고 말씀하시네" 이렇게 본인의 약함을 자랑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요새 아주 유명한 위러브라는 찬양팀이 있습니다. 언젠가 올라왔던 사친다노라는 찬양이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찬양은 문제가 없으나 춤을 추는 사람들의 영상 중 몸에 문신이 가득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무슨 문신이야. 저걸 자랑이라고 드러내고 다니나?" 한창 논란이 일고 나서 위러브 대표님께서 해명을 하신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워쉽팀의 팀원들 중 문신을 한 분은 일부로 지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 날의 탕자의 흔적을 굳이 지우지 않고 그것을 볼때마다 지금 예수님 만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의 흔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탕자의 흔적이 있으신가요? 굳이 지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문신을 지우려고 애쓰지 말라는 표현도 맞겠지만 그것 뿐 아니라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아픔들과 내 몸에 손을 댄 흔적들이나 상처들을 굳이 지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탕자 때의 흔적입니다. 예수님은 그마저도 사랑하시고 덮어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대로 오라고 하십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의사에게 가서 애써 자기 아픈 곳을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숨긴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몸이 더러운 사람들이 때를 밀러 목욕탕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본인은 너무 더럽다며 목욕탕에 가는 것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가지 않는 것은 아주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딸들을 대할 때 "예전에 이랬기에 저랬기에 넌 불결해"가 아니라 "그냥 너는 내 아들이고 딸이야"라고 말하며 안아주실 것입니다.


10절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예수님은 늘 역설적인 분이시고 비효율적인 사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남들은 나의 약함을 가지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게 있는 약함을 강함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약함이 강함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내게 있던 슬픔이 예수로 인해 자랑이 되고 내게 있던 상처가 예수로 인해 강함이 되며 내게 있던 탕자의 흔적이 예수로 인해 예수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들을 이기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에 지지 맙시다. 환경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환경은 하나님보다 절대 크지 않습니다. 내 약함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시면서까지 사랑했던 것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내 옆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꼭 기억하십시오. [난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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