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특강2] 야곱과 라헬 (인내와 헌신)

 이성특강2. 야곱과 라헬. 부제는 인내와 헌신입니다. 지난 룻과 보아스에 대해 알아보며 굉장히 심도있게 이성교제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훑었기 때문에 남은 세 개의 시리즈는 물 흐르듯 진행되리라 생각 됩니다.


야곱과 라헬

본문은 창세기 29장 30절입니다.

30절 :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마찬가지로 창세기 28,29장 등 전체를 읽으시면 더 이해가 잘 되시리라 생각 됩니다. 지난 룻과 보아스에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합니다.

첫째,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보호

둘째, 정직하게 사랑할 것, 즉 책임을 다할 것

셋째, 연애는 하나님 안에서, 연애는 둘이서


이번에는 야곱과 라헬을 통해서 이성교제는 어떻게 하면 성경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아주 간단히,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에서에게서 쫓기게 됩니다. 아버지인 잉삭과 어머니인 리브가가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찾아가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창세기 28장 1-3절] -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야곱은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우여곡절 끝에 라반의 집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자면 외삼촌 라반이 한 달을 야곱과 함께 지내고 나서 얘기를 합니다.


[창세기 29장 15절] -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그러자 야곱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외삼촌에게 있는 두 딸 중 외삼촌의 둘째 딸인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일을 할테니 라헬을 본인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17절에서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력이 약한다는 뜻은 단지 눈의 시력이 나빴다고 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장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아무튼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던지 7년이 며칠같이 흘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29:20)


약속했던 7년이 지나고 야곱이 라반에게 기한이 찼으니 본인의 아내를 달라고 얘기합니다. 그 날 저녁, 라헬이 있다고 한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여인과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혼인을 한 것입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불이 환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암흑 가운데 라헬인 줄 알고 하룻밤을 보냈으나 아뿔사, 아침이 되어서 보니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화가 나서 외삼촌에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나를 왜 속이냐"라며 역정을 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다"라고 얘기하며 야곱을 더 화나게 만듭니다. 이어서 라반은 야곱에게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약속했던 칠일을 채우고 라반이 딸 라헬도 야곱에게 줍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볼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레아가 불쌍하지만 지금은 이성교제 특강, 교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야곱과 라헬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랑은 희생이다.

야곱은 너무나 아름다웠던 라헬을 보고 한 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품삯을 주겠다던 라반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고 딸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 7년이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내 돈, 명예, 청춘을 다 바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다 버릴 수 있나요? 버린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내놓을 수가 있나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7년동안 기다릴 수 있나요? 그래도 야곱은 외삼촌이 7년을 일하면 딸을 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해서 그 사람만 바라보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면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돈을 감수해야 합니다. 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내 감정을 감수해야 합니다.

진짜 그 사람을 사랑했다면 혹여나 이런 감내를 하고 나서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보내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짝사랑의 단계에서 증오로 변하거나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선물을 했고, 널 위해 7년 동안이나 일했고 널 위해서 내 청춘을 다 바쳤어. 근데 날 사랑해주지 않아? 내가 이런 희생을 했는데 너는 내 마음을 몰라줘? 날 만나달라고!!!" 이 어찌 사랑이겠습니까? 이건 사랑이 아닌 집착입니다.

본인이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감수했던 희생들을 무조건적인 사귐으로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증오이며 집착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람의 앞날을 위해 축복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너를 좋아하므로 나도 성숙해질 수 있었고 내 청춘이 즐거웠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 것을 알았지만 나느 그래도 널 축복할게. 행복한 연애를 하길 바래." 이게 진정으로 사랑한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하셨나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무슨 희생을 감수하셨나요? 자기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자기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므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다고 하셔서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내 아들까지 보냈는데 너희는 날 사랑하지 않아? 맨날 다른 생각하면서 바람 피면서 날 잊고 살아 말이 되냐? 저주나 받아봐라 이 자식들아!!!" 이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기다리고 기대하시며 우리를 축복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요가 아니고 자발적인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나요? 그럼 마음껏 좋아해보되 하나님께 여쭙고 이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꼭 여쭙고 감정을 표현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희생을, 열심을 다해서 결실을 맺었다면 그 희생은 잊어버리십시오. "내가 너랑 사귀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얼마나 열심히 했는 줄 아냐. 넌 이제 내 꺼야"라고 자신의 노력을 상대방에게 적립시키기보다는 앞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얼마나 더 사랑할지를 생각하시고 이 사람과 만나기 시작했다면 희생이 끝이 아니라 더 큰 희생이 기다리고 있으나 널 보면서 이겨내고 희생보다 더 큰 사랑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감정에 반응하지 말자.)

야곱은 그렇게 7년을 며칠같이 여기면서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외삼촌의 배신이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날까요? 잠깐은 감정에 반응하여 외삼촌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냈습니다. 하지만 금방 감정을 추스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7일, 7년을 더 일했습니다.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은 더더욱이나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허허, 흐흐, 얘 좋아. 나 얘랑 만나볼래. 아 만나보니 별로야 헤어질래." 연애고 결혼이고 이별이고 이혼이고 너무나 쉬운 세대가 되버렸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다림이고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며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성교제는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아무 준비없이 잠깐의 배려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연애를 시작해버린다면 그 연애는 길게 가지도 못할 뿐더러 길게 간다 할지라도 겉모습만 보고 그냥 그 사람이 잘생겼기에, 이쁘기에, 돈이 많기에 등등의 이유를 대며 만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큰 오해를 합니다. 가령, 어떠한 사람이 무엇을 챙겨줬다거나 옷에 묻은 무엇을 떼준다거나, 생일 선물을 줬다거나 조금만 잘해준다고 해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별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잠깐 설렐 수는 있습니다. 설레인다고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냉철하게 냉정하게 돌아보고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그랬는지, 나한테만 그러는건지 다른 사람한테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나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 알기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잠깐 설레였던 감정에 바로 반응한 나머지 오늘부터 1일이라는 생각을 혼자 시작하게 된다면 상처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금방 사랑에 빠질 수는 있습니다. 빠졌다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주변환경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내가 이 사람의 삶 속에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는건지를 기도하면서 잘 생각하고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니 이 사람도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 이런 것은 연애고수가 하는 말일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고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게끔 최소한의 복장과 최소한의 외모단정 등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과 보아스에서 말했듯 만나게 되면 사람 마음을 정복했다는 마음이 커지기에 금방 식는 사랑일 수도 있고 최소한의 복장과 외모단정이 풀렸버렸을 때, 즉 콩깍지가 벗겨졋을 때 상대방이 떠나버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기다리면서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나도 사랑하는지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길 원하십니다. 예로 목욕탕에 가는 사람은 때가 있기 때문에 목욕탕을 가는 것입니다. "나는 때가 너무 많아. 내가 가면 목욕탕에 있는 따뜻한 물들이 날 싫어할 거야. 목욕탕의 하수구가 날 싫어할거야. 꽉 막혀버리니까." 이러한 생각들은 아주 미련한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물었는데 "어디가 아파서 왔게~요?"라고 말하는 바보 환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가 아픈지 상세하게 말해야 제대로 된 치유를 받을 수 있겠지요.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옷을 잘 입어서? 잘 생겨서? 이뻐서? 돈이 많아서? 헌금을 많이 해서? 교회에서 맡은 게 많아서? 이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너니까. 너는 내 자녀니까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제게는 아들이 두명 있고 출산이 임박한 아들이 또 있습니다. 이 아들들이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일들을 했다고 할지라도 제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첫째 아들이 화가 나면 "엄마아빠 미워. 엄마아빠랑 안 놀아줄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 아들이 저를 미워한다고 저를 놀아주지 않는다고 제 아들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변함없이 제 아들입니다. 이럴때도 저럴때도 제 아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야곱도 아마 7년, 7일 등 이 시간 동안 외삼촌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싸고 하며 본연의 모습을 라헬에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였기에 라헬도 야곱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고 혼인 후 7년을 더 머물며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여러분,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해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완전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복사 붙여넣기는 할 수 없으나 따라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셨듯 우리도 희생을 감수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감정에 반응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내해주셨듯 우리도 상대방을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인내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더욱 성숙한 연애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 연인이 없다고 걱정하는 여러분, 그럼 지금은 기다릴 때고 준비할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니 조급해하지 않고 기도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니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