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특강1. 룻과 보아스입니다. 부제는 책임지는 것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성교제를 잘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이성을 존중하는 것일까에 대한 시리즈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룻기 3장 13절입니다.
13절 :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이성교제 특강으로 룻과 보아스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룻과 보아스를 알기 위해서는 룻기 전체를 읽으며 맥락을 이해하면 더 좋겠습니다.
이 시리즈들을 통해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과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남이 될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룻기 앞에는 사사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에게 지도자 역할을 맡겼습니다. 시간이 지나 여호수아마저 죽고 맙니다.
이후의 일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때까지 있었던 사람들은 민족의 지도자가 죽자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그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죽자 하나님을 완전 잊고 살게 되버립니다. 죄가 죄를 낳고 죄가 죄를 낳아 온 세상이 더러워졌습니다.
여호수아 한 사람이 죽었다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가정에서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으십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자손 대대로 알리고 교육을 시켰어야했지만 생활이 편해지자 점점 하나님을 잊어가고 말씀을 이어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참으시고 참으시어 사사들을 보내십니다. 사사들을 보내셨지만 똑같은 일들이 반복됩니다. 사사기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사사들을 보내었더니 몇 년동안은 평온하더라, 그 후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우상숭배, 혼합주의 등) 하나님을 잊어가자 또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보내시고 또 악을 행하고 또 보내시고 그러는 때에 본문을 맞이하게 됩니다.
본문의 룻을 알기 전 시어머니 나오미를 알아야 합니다. 나오미는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에 그들이 살고 있던 유다 지역과 그 지역에 있던 베들레헴의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을 이주했었습니다. 약 10년간 지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남편 엘리멜력이 죽었고 두 아들도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됐으니 며느리들아 너희도 할만큼 했으니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라"라고 합니다. 오르바는 집으로 돌아갔고 룻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룻기 1장 16-17절]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렇게 말하며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어머니가 살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룻과 시어머니의 관계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하나님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버리지 않을게요. 하나님 끝까지 믿을게요"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시기가 보리를 추수하는 것이 시작하던 때입니다.
그 베들레헴에는 나오미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친족, 즉 보아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라고 합니다. (룻 2:1) '유력하다'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힘이 센 용감한 장수를 뜻하지만 보아스에게 사용된 유력한 자라는 것은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부유한 사람, 즉 부자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보리를 추수할 때가 되자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서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먹을 것이 없었기에 가난한 사람과 과부였던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남겨두었던 이삭들을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룻이 참 대단합니다.
그 때 보아스가 룻을 발견하였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것을 보더니 사환에게 묻습니다. "누구의 소녀이냐?" 그러자 사환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입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부지런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소년들에게 명하여서 이 소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고 목이 마르다면 물을 주라고 하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룻이 "저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십니까?"라고 묻자 보아스는 "네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했던 모든 일들을 베들레헴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라고 하며 앞으로 쭉 일을 하게끔 도와줍니다.
시어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그가 엘리멜렉의 친족이므로 그가 기업 무를자라고 얘기 해줍니다.
[레위기 25장 25절] -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기업 무를 자라는 것은 가난 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가난한 사람의 빚을 대신 탕감해주고 책임까지 져주는 제도를 말했습니다. 그것을 받아드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업 무를 자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룻기 3장 1-5절] -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은 나오미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밤중에 보아스는 뭔가 이상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깼을 것이며 누구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룻은 "내가 당신의 여종 룻이고 이불을 덮어달라."고 말합니다. 이어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라고 애기를 합니다.
보아스는 감동했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는 나이가 룻보다 한참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기에 현숙한 여인이라고 표현을 해줍니다. (룻 3:10)
보아스는 바로 룻을 취하지 않고 얘기합니다. "내가 기업 무를 자가 맞긴 하지만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 그 사람한테 물어보고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되고 혹시 그가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고 하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 라고 합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그대로 얘기했고 나오미는 그가 할 일을 할 것이라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 보아스는 아주 바삐 움직였습니다. 룻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기업 무를 자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엘리멜렉의 땅을 네가 사주겠느냐?"
"그렇게 하겠다."
"그런데 그 땅 뿐 아니라 그 죽은 자의 아들, 그러니까 그 아들의 며느리도 데려가서 그 기업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
"음,, 난 그럼 못 무르겠다. 네가 해라."
이렇게 보아스는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게 됩니다. (룻 4:10)
시간이 흐르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납니다. 이름이 오벳입니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온 이방 여인의 순종을 보신 하나님께서 훗날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성경 룻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룻과 보아스에 대한 사랑의 태도를 들여다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감정들과 어떠한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첫 번째, 룻에 대한 보아스의 태도
보아스는 가난했습니까? 부유했습니까? 그 당시에 부유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시대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아스는 시어머니를 섬기는 룻을 보며 소년들이 그녀를 괴롭히지 않게 사전단속해주었고 물도 주고 같이 밥도 먹게 해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존중했고 보호해줬습니다. 우리는 이성을 좋아하는 단계일 때는 존중하고 보호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좀 그렇지만 "내 것이다, 내 것이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면 함부로 대할 때가 굉장히 많아집니다. "이 사람은 이제 나랑 사귀게 되었으니 막해도 될 거야. 아, 얘랑 만나보니 별거 없네. 이제 시시하네." 이런 생각들이 들어와 처음 만날 때의 그 소중함과 설렘은 온데간데 없이 지루해하고 시시해하며 멀리하게 되고 소홀히 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예로 사무엘하 13장에 보면 암논과 다말이 나옵니다. 다윗에게 두 아들 압살롬과 암논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여동생이 다말입니다. 그 여동생을 사랑한 암논이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이래저래 꼼수를 써서 이복 누이인 다말을 억지로 동침해버리고 맙니다. 강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사무엘하 13장 14-15절] -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람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결국 암논은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지금은 죽임을 당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장실을 들어갈때와 나갈 때 마음, 즉 그 여인을 사랑했던 마음과 자신의 욕구를 다 채우고 나서의 그의 마음은 천지차이였던 것입니다. 전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없고 상대방의 대한 보호는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룻과 보아스를 본다면 보아스는 룻을 보호해주었고 존중해줬습니다. 또한 룻도 그 감사를 잊지 않고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만든 존재들입니다.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외모가 이렇거나 저렇거나 환경이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대방을 무시해서도 안되며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존중과 보호입니다.
두 번째, 정직하게 사랑할 것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 룻은 몰래 보아스의 옆에 누웠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룻이 너무 간교하다거나 의도를 가지고 유혹을 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유다와 다말처럼 대를 이어가는 것, 즉 혼합주의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셨고 나오미에 대한 룻에 순종을 더 깊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대를 이어서 내려오다가 사사기부터는 다른 이방인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이 시기에 하나님의 의도는 우상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민족끼리 결혼을 우선시 했습니다. 사사기에서는 다른 지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게 되며 우상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점점 하나님을 잊어갔습니다.
다시 돌아와 나오미와 룻이 간교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대를 이으려고 했으며 대를 이으려면 베들레힘의 남자와 다시 결혼을 시켜야 하나님의 대가 이어진다고 생각한 나오미와 그 생각에 대한 순종을 그대로 했던 룻을 바라봐야 합니다.
보아스는 그 날 밤, 룻을 아내로 바로 맞이해도 됐고 정욕을 참지 못할 수 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법을 따랐습니다.
자기보다 기업 무를 자가 더 가까이 있었음을 알았고 순차대로 정직하게 법을 지켰습니다. 내 정욕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우선디 되었던 것을 보아 보아스는 믿음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요? 정직하게 사랑하고 있나요?
호감이 생겼다고 바로 그에게 다가가거나 누군가 다가왔다고 생각해보지 않고 "응, 좋아"라고 하지는 않나요? 하나님께 여쭤보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성경의 예로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가 나옵니다. 요셉의 용모가 아주 빼어났기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장군의 아내면 지금 생각했을 때 지적이었을 것이며 아주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거절했고 결국 누명을 써 감옥에까지 갇히게 됩니다. 그래도 요셉은 그 상황에서 하고 싶으나 하면 안되는 것을 구별하였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절하고 옥에 갇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호감이 생겼다거나 그런 시그널이 있거든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거 맞아요?"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인가요? 제가 만나봐도 되는 사람인가요?"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또한 '정직하게'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들이 순결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요새는 TV 프로그램, 특히 예능에서는 이혼을 아주 잘한 것처럼, 고등학생 엄마와 아빠를 방송에 내비취기도 합니다. 결혼은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맞지 않으면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과 동거하기를 쉽게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럼 결혼했는데 맞지 않으면 헤어지면 더 복잡한 것 아닐까요?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더 깔끔하지 않냐?"라고 말합니다.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책임'입니다.
법으로 묶이게 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법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멋진 척, 깨어있는 척, 잘 나가는 척, 지성인인 척 얘기는 하나 그들의 결론을 책임 없는 삶을 원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맞지 않으면 헤어졌을 때 그 이혼의 복잡함과 위자료 소송, 아이들의 문제 등 책임을 지기 싫은 것입니다. 즉, 정직하게 살기 싫은 것입니다.
TV에 나오는 것처럼,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잠깐의 실수로 아기가 생기고 아기를 지우고 아기를 키우다가 버리고 이혼하고, 이런 것들은 그 생명에 대한 아주 큰 실수이고 악한 죄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살인과 똑같은 것입니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의 잠깐의 욕망 때문에 너도 나도 힘든 삶을 선택할 것인지, 혹여나 그러한 실수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과 그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랑의 책임 말입니다.
자매님들은 특히 조심하십시오. 남자는 단순하며 남자는 늑대라는 말이 맞습니다.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얘는 괜찮아, 얘는 진짜 믿을만한 사람이야, 이 오빠는 괜찮아."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의 욕망과 영원한 책임은 천지차이입니다.
형제님들도 조심하십시오. 자매님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쁘게 화장한 모습, 짧은 치마, 사람을 넘어가게 하는 애교 등 그것은 잠깐의 불가합니다. 만나다보면 겉모습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와 속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세 번째, 연애는 하나님 안에서 연애는 둘이서
룻기 3장 14절 -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는 룻을 존중했고 보호하려 했기에 또 정직하게 사랑하려고 했기에 룻에게 다른 사람들이 같이있었던 것을 모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린 연애를 책을 보고 배우거나 드라마와 영화, 지인들에게 많이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연애를 많이 해봐야 연애를 잘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어느정도 공감은 되나 연애는 당사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조언을 구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신뢰할만한 이에게, 더욱 경험이 있는 어른들에게 구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친구들에게 조언은 마찬가지이며 책은 저자의 생각과 경험만 잔뜩 들어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가상현실 그 자체입니다.
또한 연애를 많이 한다고 하여 연애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연애를 잘한다와 못한다를 누가 판단합니까?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보호하며 정직하게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연애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주변에 너무 떠벌리면 그 사람은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둘이 연애를 하는 것인지 여러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인지 상대방에게 의문을 갖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쭙고 신뢰할만한 이에게만, 소수에게만 털어놓길 바랍니다.
이제 끝마치려고 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존중하고 보호했고 정직하게 사랑했습니다. 책임을 다했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상대방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을 먼저 찾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먼저인지 그 사람이 먼저인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인지 아닌지 사인을 달라는 기도, 그 사람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충분한 시간을 통해 겉모습 말고 속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충분하게 알아보고 교제를 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가 아닌 하나님께, 혹은 신뢰할만한 이에게만 나누시기 바랍니다. 연애는 셋이서 하는 것이라 아니라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룻과 보아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시길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