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가치

 같이의 가치라는 말씀 주제를 가지고 나눕니다. 예수님이라는 기준점을 두고 공동체가 같이 무언가 할 때 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같이한다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에 대해 알아보아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 되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의 가치

같이의 가치


본문은 사도행전 2장 43-47절입니다.


43절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절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전에 가정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매일 아침, 저녁은 늘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십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식욕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동안 있을 계획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아침이요,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얘기하며 돌아보고 또 다음날을 계획하던 것이 저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족은 질서가 생겼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훈계와 조언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밥상머리 교육이었고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받은 교육으로 세상에 나아가 살아갈 예절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가 요새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빠지는 현시대로 인해 맞벌이 가정이 당연스레 비중이 늘어났고 디지털이 발달하다 못해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바쁜 현대인들, 특히 10대~30대들은 핸드폰과 지내는 시간, 컴퓨터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레 디지털 세상을 접하다보니 '나'라는 이름이 아닌 가상 세상의 'ID'가 '나'가 되어버린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아까 말했듯 가족과 밥을 먹을 시간이 부족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밥상머리 교육은 뒷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른들은 다음세대에게 관심이 없어졌으며 다음세대는 어른들에 대한 존중이 차차 사라진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더욱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단순히 말씀을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말씀 속에는 인성이 있고 인격이 있고 인품이 들어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람, 진정한 사회의 일꾼을 양육하게 되는 것도 교회의 역할이 되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같이'가 어색해졌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볼 수 있고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아이들이 또래들을 대할 때도 어색해진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일들이나 재밌는 일들을 "같이 해볼래?"라고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왜?, 싫은데?, 어쩔티비" 등등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대답이 이상하게 나가버리는 경향이 생겨버렸습니다.

감정표현이 서툰 세대가 되어 같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그럼 교회에서는 어떤 영향력을 보여야 할까요?


본문인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임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44절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물건들을 서로 통용(서로 넘나들어 두루 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아 필요를 채워줬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닌 같이 무언가 할 때는 이러한 큰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혼자서는 나눌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입니다. 그것은 독백연기에 불과합니다. 혼자서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퍼 거울을 보며 "같이 먹을래?, 아~해봐." 하며 혼자 먹고 "응, 고마워"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죠.


교회에서는 밴드가 흔히 보입니다. 신디, 베이스, 일렉, 드럼, 싱어, 리더, 방송 및 음향팀 등 한 밴드가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한 찬양단이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고 혼자서는 합주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가을이면 물드는 단풍들을 바라볼 때 나뭇잎 하나하나 보면 파랑색, 빨강색, 갈색 등 여러가지로 보이나 멀리서 그 나뭇잎이 아닌 산들을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것을 우린 단풍이라고 부릅니다. 알록달록한 것들이 모여 다채로운 단풍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수련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캠프파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큰 통나무 하나를 가지고 와서 불을 지피는 것보다 작은 나뭇가지들이 모이고 모였을 때 큰 불을 이루어냅니다.


이처럼 같이할 때 나눔이 일어나고 같이 할 때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같이할때의 오는 가치를 우린 알아야 합니다.


46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같이의 가치를 알았다면 거기서 머물면 안됩니다. 그냥 인간적인 모임들은 언젠가 다툼이 생기고 파가 갈라지며 무너집니다. 누구 하나가 자리에 없으면 뒷담화가 시작되고 그 뒷담화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그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46절의 말씀처럼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 뜻은 그냥 교회 와서 놀고 먹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주님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그런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찬송을 올려야 합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송할 때 서로의 필요를 알게 되고 서로의 필요를 알게 되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되며 그러할 때 2개였던 상처가 1개로 줄어들게 되며 1개였던 기쁨이 2개로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끼리끼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야 합니다. 순전한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일단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예수님이란 분에 대해 나누고 우리의 모임이 어느 곳을 향해 나가야 하는지 예수님이란 주제를 가지고 나눠야 합니다. 그 후에 비그리스도인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동등한 분들이 각기 다른 일들을 행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필요도 없으시며 우리를 만들지 않으셔도 됐습니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사랑이 너무 크다보니 흐르고 흐르고 넘쳐 흘러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만들게 된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들이 잘못할 때 번개를 내리셔도 되고 심장마비를 주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을 산 주인에게 장난감이 "날 왜 그렇게 가지고 노느냐? 날 왜 부서뜨리느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에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고 수많은 고초를 당하셨고 조롱을 들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3일만에 살아나셨고 우리를 위해 다시 온다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돌아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기도했다면 그 후에 할 일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눈길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47절 후반부에 말씀처럼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 문 밖에서 늘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 마음 문을 부수고 강제로 들어오셔도 되는 분이시고 그러실 수 있는 신이십니다. 하지만 사랑의 주님은 기다리시고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드리고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드릴때가 되지 않았나요?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드렸다면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기도하고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셨듯 나도 마음이 어려운 형제 자매를 돌아보며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를 돌아보았다면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모르는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나의 할아버지, 나의 할머니, 나의 형, 나의 누나, 나의 동생, 나의 오빠, 나의 언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이기를 힘씁시다. 하지만 그 모임이 웃고 떠들고 세상적인 이야기들만 하고 음탕한 이야기들만 나누다가 폐하는 모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했더니 어려운 이웃들이 보이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하게 되는, 그러한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있을 때 보이는 신앙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하고 있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일 것입니다. 혼자는 설 수 없습니다. '人' 사람 인이라는 한자입니다. 작대기가 두개가 있어야 안정감이 있게 설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단풍을 이루어낼 수 없고 혼자서는 합주를 할 수 없으며 혼자서는 큰 불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우리 이제는 같이할 때 생기는 힘의 가치를 믿읍시다. 예수님이란 가치를 향해 같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어두울 때 빛은 빛나고 싱거울 때 소금의 역할은 배가 됩니다. 지금 세상이 많이 어둡고 사랑이 메말라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더욱 빛날 것이며 맛을 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같이의 가치를 아는 크리스쳔, 예수쟁이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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